[스크랩] 달리며 생각하며
새벽 3시반
부시럭 부시럭
마라톤팬티 런닝 걸치고
가방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밖은 칠흑같은 어둠
누가 오라는것도 아닌데
반기는 사람이 있는것도 물론 아닌데
자석에 이끌리 듯 종종걸음
귓볼 스치는 새벽공기
가르는 바람이 제법 매섭다.
버스에 도착하니
먼저온 동료들 반기고
하나같이 잠을 설쳐 푸석한 모습
차창에 기대어 잠 청해보지만
풀코스의 중압감이 다가와
잠을 이루기는 애초에 글렀음을 안다.
몇번을 뒤척였을까?
휴게소에 들러 아침식사를
마수걸이 손님들이 떼서리로 몰려와서는
음식파는 주인들 왕방울 눈이 되었지만
밥이며 국이며 모두 싸가지고 와
염치없이 테이블 차지하고 앉아 아침 해결
오늘 마수걸이가 영 아니네
에라이~~~
소금이라도 뿌려야 할까부다
물도 공짜로 마시고
내려놓는것이라곤 화장실 무엇? 밖에 없으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너무하네
오늘만 하는 장사는 아닐터
다음에 다른휴게소 안가고 꼭 여기에 들러
우동 한그릇이라도
따끈히 팔아줘야 겠다라고 속으로 다짐
경주에 도착하니
새벽에 매섭게 불던 바람
어느새 잠잠 맑은 햇살 우리를 반기고
수많은 건각들 스트레칭 후 일렬로 도약
달리는것도 급수가 있고 서열이 있는법
귀족 엘리트 선수들 먼저 보내드리고
일반 서민 달림이들은 한참 기다렸다 출발해야한다.
귀족 선수들 대접은
앞에서 번쩍번쩍 길 비키라
백차가 선도에 서서 호위해주고
시계달린 길잡이 앞에가며
기록단축하라 편하게 알려주고
여럿이 함께 보라며 사각 큰렌즈 들이대고
먼모습 가까운 얼굴찍어
안방사람들에게 보여주지만
우리같은 서민 달림이
어짜다 한번 숫자로 가득메운 군중 무리로
잠시 할애해서 보여주는것도 감지덕지
카메라만 오면 손을 흔들고 난리를 핀다.
그리고 물도 간식도
귀족 선수들 먼저 마시고 먹고 난 다음 우리차지
남은것 있으면 그도 고마와라 여기는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사람들의 집합체
또한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박수치고 환호하는것이 주된임무 ㅎㅎㅎ
엘리트 선수들이 출발한다음
기다리는 10여분 그리 지루할수가 없네
신호대앞에서서 채 파란불이 들어오기도 전에
질주 본능으로 부르릉대는 것이라고나 할까?
이윽고 출발
운동장 박차고 나서는데
길에 도열해 응원해주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가 뭐
금메달 따는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국위선양 하는것도 아닌데
우뢰와 같은 함성을 보내주심에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한편으론 쑥쓰럽기도
그생각도 잠시
시내에 접어들어 한 5킬로 달리니 벌써 숨이 턱에찬다.
한꺼번에 우루루 몰려가며
도토리 키재기
남들이 알아주지도
시상대에 오를일도 없는 알량한 기록 단축을 향해
정신없이 내달았으니
초반인지라 분위기에 휩쓸려 분수없이 달리는 아마츄어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페이스 조절을 하는데
이를 놓칠새라 뒤에서 옆에서 치고 앞으로 나가니
이내 또 조바심이 나고
지금 과욕이 후반에 눈덩이되어 내게 돌아올것 생각하며
가까스로 진정하고 달리니 차츰 몸도 마음도 안정을 되찾는다.
얼마을 달렸을까?
눈앞에 펼쳐지는 커다란 봉분들!
신라 천년을 호령했던 선열들이 묻혀 계신곳
살아 생전에도 얼마나 머리가 무거우셨을텐데
돌아가셔서 까지 저렇게 크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시니
후손들이 정성을 다한답시고
돌아가신곳에까지 흙과 돌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았으니
정말 너무 힘드시겠네............
시답잖은 생각과 함께 여유만만
시내 곳곳 신라 천년의 모습을 보며 달리는데
낭만적인 공간 점점 사라지고
돌았던 코스 다시 반복하는 통에 재방송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니
눈앞이 아득 덜컥 겁이난다.
저곳을 지나고도 얼마를 더가야 하는데.......
날마다 새로운 장면이면
기대감과 함께 무지의 용감함이 용기를 주지만
TV나 마라톤이나 다시보는 장면은 정말 아니네
본장면 또보기를 얼마
어찌어찌 하프코스 지나고
나머지 반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데
잘나가던 두다리 차츰 파업을 예고해온다.
평소에 열심히 훈련을 해두었으면
파업휴업 걱정없이 너끈히 완주하련만
그 거리에 익숙지못한 내다리
한꺼번에 과중한 노동을 요구하니
못견뎌 쉬어가자며 버티는 것은 당연한 일
30킬로까지만 열심히 달리고
그다음부터 걷도록 해주마 약속하고는
심통을 부리지 않도록 살살 달래며
한편으론 채근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가다보니
목표한 삼자영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힘들지만 묵묵히 참아주고 동참해주는
내다리 정말 눈물 나도록 고맙다.
힘모아 한 5킬로만 더
우리 열심히 달려봄 어떨까?
약속위반이라며 버티는것을 가까스로 달래
마라톤의 마의 숫자라는 35 이어 40까지 잘 참고 지나니
후유~~~~~ 이제는 굴러가도 얼마 안남았다.
구르는것도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
운동화에 불이 났는지 발바닥은 뜨거워지고
다리는 딱딱히 굳어져 더이상 옮기기조차 힘들고
숨은 턱밑에 닿네
이젠 정말 아무런 생각조차 없다.
몸도 의지도 다 지치고
오로지 정신력 하나만을 무기로 간신히 버티며 달리기를 얼마
드디어 운동장이 눈앞에 펼쳐지고
응원하는 함성
골인지점인가부다!
아침 8시 출발
장장 3시간 40여분간 길에서 헤메고
다시 만나는 그 곳
붉은 트랙 돌아
드디어 아침에 첫 발 내 디뎠던곳 도착
길고도 지루한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
운동장 파아란 잔디에 누워
먼 하늘을 본다.
무한한 쪽빛 공간
유유히 흐르는 흰구름................
지금 내게 더 필요한것이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