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많은 시절
꿈많은 시절
학교에서 불이나케 돌아온 영길이는 가마솥을 열고는 바닥에 달라붙어 노릿하게 익은 고구마를 널름 집어 독에 들어있는 물을 바가지로 퍼다 놓고는 게눈감추듯 두 개를 해치우고 하나를 별도 손에 들고 산비탈을 향해 달린다.
국민학교 2학년
비록 먹지못해 야윌대로 야위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십리길 정도를 학교 마치고 달렸던 영길이는 별로 지치고 피곤한 기색도 없이 단숨에 재넘어 풀이 많고 고구마밭 수수밭이 없는 그곳에 도착 청운의 꿈을 펼칩니다.
내가 커서 돈을 벌게 되면 이곳을 사서 멋있는 목장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미듭풀을 입에 물고는 한없는 꿈에 젖어있던 소년은 단숨에 바닥까지 내려가 병삼이 형네 집을 찾아 갔다.
병삼이 형!
나왔어
응! 영길이 왔구나
어제 팔다남은 염소젖이 좀 있구나
니가 먹고 싶은대로 실컷 먹으렴
우물 겸 우유 보관 장소 겸 집앞 도랑에 보관되어있던 염소젖을 한사발 들이키고는
그때서야
형 우리 소 어디있어?
응 저기 중턱에서 실컷 풀을 뜯고 있으니 걱정말고 놀다가거라
내가 말이야 새총을 새로 만들었는데 너 구경좀 할래
어제는 수수밭에 어슬렁 거리는 콩새를 스므마리 남짓 잡았지
이래뵈도 백미터 앞에있는 새는 백발백중이란 말이야
고물상에서 우산대를 가지고와서 나무로 깎아 만든 총대에 노란 찰 고무줄을 칭칭 동여매고는 문방구 가겟집에서 산 화약을 부셔 넣고 탕! 탕!
어쨌든 영길이는 한번도 잡은 새는 못 보았어도 만든 총이 사흘이 멀다하고 새것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는 그 형 참 재주도 많다고 생각 합니다.
형들과 짧은 시간을 놀고 나서는 어느덧 저무는 해를 뒤로하며 실컷 먹은 우리 누렁이 암소를 몰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합니다.
아버님들의 큰 나뭇지게 행렬 중간에 묻어서 재를 넘고 골짜기 바닥에 이르면 사시사철 솟아나는 맑은 샘물 누렁이는 너무 차서 싫어하고 배를 주린 영길이는 엉덩이를 하늘로 향하곤 양껏 배를 채웁니다.
새상에 그렇게 맛나는 물 아마도 다시 그 맛을 구경하기는 힘들겠지요.
한참을 쉬고 나서는 느릿느릿 아저씨들의 나뭇지게가 일어서고 줄을 서게 되면 영길이도 중간에 한몫 끼어들어 대열을 형성합니다.
오다가 다 캐고 난 고구마밭을 들러 몇 개 이삭을 주어 씹으며 부지런히 집으로 향하던 영길이는 집앞 50미터 정도에 이르러서야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이제는 소가 뛰어 도망갈 염려도 없고 도랑물도 제법 많아 누렁이가 실컷 마시고 오른쪽배가 터질 듯이 불룩해 진 것을 확인하고는 의젓이 집으로 들어 갑니다.(종종 소가 도망가는 일이 생겼고 또 도망을 가면 힘이 부쳐서 잡아오느라 거의 매달려서 사정하는 일이 다반사였음)
아따 영길이 오늘 소 잘 뜯겼구나
애 먹었다.
고구마 넣고 밥을 맛있게 엄마가 삶아 놨으니 먹도록 하자.
시커먼 배추김치와 휘휘 젓어보아야 보릿쌀 몇 개 들어있지 않고 김치와 고구마를 넣어 끓인 갱싱이 죽 영길이가 제일 싫어하는 메뉴입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우리집 메뉴이기도 하구요.
어머이 나 이거 안먹어!
늦게까지 소띧기고 오니까 겨우 밥 삶은 거야?
주린배를 움켜쥐고는 그냥 웃방으로 향합니다.
눈물이 구슬방울처럼 자꾸 떨어진다.
앞에사는 친구네 친구집에는 콩나물에 고추장을 넣고는 맛있게 비벼서 배불리 밥으로 먹던데!
허구한날 우리집은 삶은 밥 아니면 고구마 찐 것,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나물과 곡기(보리쌀)을 9대 1이라는 숫자로 섞어서 끼니로 해결합니다.
보리밥 한그릇 맛있게 먹는 것이 소원
창꽃(진달래꽃의 사투리)을 씹으며
우리집은 동네에서 제일 끄트머리 집
우리보다 더 끄트머리 집은 병삼이 형네 집
그리고 바로 더 끄트머리 집은 외꼴 절
사방이 산으로 막힌 캄캄한 그곳
봄이되면 우리집은 하루한끼 먹기가 힘들었다.
그러면 준호와 재호와 영길이는 앞동산에 오른다.
지천으로 핀 창꽃을 경쟁이나하듯 한다발씩 꺾어 들고는 우리집이 제일 잘보이는 곳에있는 묘에 앉아 게걸스레 먹기 시작한다.
허기진 배가 채워질리 만무 하지만 안먹는 것 보다는 그래도 낫다.
묘 뜨락 옆에서 준호와 재호와 서로가 굴도 파고 돌쌓기도 하며 하루종일 놀다보면 저녁 연기가 무럭무럭 난다.
우리집에도 연기가 나는걸 보니 맛있는 것을 하는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