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잡이
가재잡이
학교에서 돌아오니 마침 아버님, 어머님이 밭에 가시고 안 계신다.
찌그러진 양은냄비 갖고는 도랑으로 냅다 달렸다.
도랑까지 간다해도 먼곳은 아니고 집 앞 삽짝(대문 없는 출입구)이 바로 도랑이니 부모님 눈 피할 수 있는 거리 50미터 상류로만 가면 되는 것이다.(소 안뜯기고 가재 잡는다며 혼나지 않을 정도의 거리)
지천으로 널린 게 가재다.
제딴에는 정말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었다고 하지만 영길이 눈에는 어림없다.
아니 어디 숨었는지 훤히 다 안다.
맑은 물 나오는 곳 돌맹이 앞에 공사한 흔적을 수북이 남겨놓은 그곳에 의례히 굵고 틈실한 가재가 있었고 부부가 함께 있는 경우도 많았다.
또 운좋으면(가재로서는 지독히 운이 나쁜 게지만) 가족 모두가 한곳에서 잡힐 때도 있었고, 종종 반상회를 하다 들켜 동리 가재가 한꺼번에 잡히는 경우도 허다했다. ㅎ ㅎ
두어시간 정도 가져간 양은냄비는 가재로 가득 차게 되고, 그 속에서 가재들은 바그락 바그락 소리를 내가며 나름대로 최대한 험상궂은 표정과 함께 거품을 곁들이고 힘센 두팔을 벌려가며 영길이를 위협해보지만 어림없는 수작, 너희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오늘 저녁이면 된장과 함께 풀어 쇠죽솥 불 때고 난 그 곳에 얹혀질 것이고 그럼 이내 황천행, 뚜껑을 열어보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빠알간 가재장이 되어있을 것이다.
어머님, 아버님 오시기전 부지런히 소 뜯겨야 할일!
정신없이 뒷산으로 내달아 이리저리 풀 좋은 곳으로 안내하면서 실컷 먹도록 최상의 서비스를 다 한다.
이다음에 커서 나는 이곳에 목장을 차릴 것이다.
이 넓은 재넘어골에 한가로이 풀 뜯도록 누렁이 풀어놓고 함께 살 것이다.
상상에 젖다보면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배불리 먹은 누렁이 앞세우고 집으로 향한다.
틀림없이 소 안뜯기고 가재만 잡았다며 어머님 나무라시겠지만 그래도 저녁상에는 빨갛게 익은 가재가 올라올 생각에 마냥 즐겁기만 하다.
그런데 이 당시만해도 기생충이 무서운 때라서, 가재에는 간디스토마가 많다며 늘상 선생님께서 조회시마다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없어서 못 먹는다.
아니 그 가재먹고 디스토마 걸려 죽은 사람 한나도 못 봤다.
어머님께서 보리밥과 고구마로 지으신 저녁과 함께 가재 반찬 곁들여 에 성찬을 즐기고 단잠에 빠진다.
낮에 희생된 가재들이 가끔 꿈속에서 공격해 오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