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어린시절

스피카를 달고

가든라이프 2006. 1. 16. 22:34
 

 

 

 

스피카를 달고

우리집에 신기한 일이 생겼다.

제일 마지막 골짜기 집으로 조용하기만 하던 우리집에 대단히 놀라운 변화가 생긴 것이다.

면사무소직원과 동리 청년들이 까만 줄과 함께 네모난 상자를 들고 오더니 갑자기 재미난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것이다.

힘도 들이지 않고 연신 말소리를 해대고 연속극에다 최신 유행가도 계속 나오네?

저안에 들은 사람은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다.

아니 점심 저녁도 안먹고 하나?

하도 신기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루 벽에 걸어놓은 그것을 내려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말도 시켜보고 하지만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제멋대로  지껄이기만 한다.

어쩌다 집에 있을 때면 심심풀이 장난감이 그것이다.

특히 말굽 자석은 못을 비롯한 쇠붙이를 착착 달라붙게 하는게 정말이지 요술 상자다. 

내려서 갖고 노는 것을 아버님이 보시면 종아리 맞을 일이지만 그래도 신기하고 궁금한 걸?

  높은데 걸어둔 것을 막대기로 내리다 뜨락에 팽개쳐 박살이 나기를 몇 번, 면사무소 한켠에서 스피카 사업을 하는 그곳으로 고치러 갈 때마다 혼나기는 해도 전기인두로 지져 잘도 고쳐 주었다.

그 문화 혜택을 받는 조건으로 보리때와 나락타작 때 한말씩 수곡을 가져갔으니 거기에 A/S비용도 포함이 된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집 부모님은 그 재미난 것을 제대로 들으실 틈이 없으셨다.

낮에는 일하러 가셔야만 하셨고 밤늦게 오셔서 좀 들으실만하면 고장 내놓기 아니면 줄이 끊어져 먹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집만 유독 먼 거리를 삐삐선으로 연결 했으니 비바람이 치거나 눈이 내리면 영락없이 문화혜택 중단이었다.

어쨌던 그눔의 스피카는 탈도 많고 병도 많이 앓았고 치료도 많이 받았고 종아리도 덤으로 많이 맞게 했으며 거의 매일이다시피 면사무소를 찾아가 고쳐오는 것이 일이었다. 그래도 어쩌다 모처럼 점심을 집에서 드신 후에 고영춘 장소팔이가 나올때면 아버님 어머님 들에 가시는것도 잊고 다 끝나야 가실 정도로 인기 또한 높았던 신기한 물건 이었으며 우리집 보물 1호였다.

자주 끊어지는 줄과 정전 등으로 스피카 방송은 수시로 중단되었지만 그래도 많은 문화 혜택을 주고 사라진 명물임에는 틀림없다 하겠다. 


'추억 > 어린시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의 감  (0) 2006.02.01
병아리와 닭  (0) 2006.01.19
누렁이  (0) 2006.01.12
노랑고무신  (0) 2006.01.09
사하라  (0) 200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