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마음/마라톤

서울국제마라톤

가든라이프 2006. 3. 15. 00:37

 

 

 

 

= 서울국제 마라톤 =

 

새벽 3시........

머리맡에 놓은 핸드폰

일어나라며 요란스레 울려댄다.

 

부시시 눈비비며

비몽사몽으로 엊저녁 챙겨놓은 옷가지하며

마라톤 시계등을 챙기고

 

혹시 빠진게 없나 다시한번 체크

 

방바닥을 보니

마라톤 팬티와 런닝이 얌전히 남아

한심하다는 듯 나를 비웃고 있다.

 

런닝앞에다 출전 배번을 달았기에

그것을 입고는 잠자리에 들지못해

내일 아침에 갈아입으리라

 

얌전하게 잘도 개어 놓은것을 잊고는

걷옷까지 전부 챙겨입었으니

 

그래맞다!

빠짐없이 제대로 챙긴다면

오히려 그게 잘못되고 이상한게지

그대로 두고 집을 나서지 않은것만도 천만다행 아니냐

 

마라톤을 한다며

운동화 신는것조차 잊고

구두신고 가는 난데

그나마 이것은 양호한 것

아침부터 마음 상하는 일 없도록 하자

 

다시 모두 벋고

알몸서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다시 차려 입는다.

 

바깥 바람이 매우차니

마라톤 스타킹을 입고가는게 좋겠다라며

별도로 서랍에서 내어주는

밤새 한방을 쓴 사람의 권유도 무시하고

달리게 되면 그조차 짐이되고 오히려 거추장스럽다며 뿌리치고는 

초연히 마무리.........

 

밖으로 나서니 날씨 매섭기가 정말 장난 아니다.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 하상주차장까지

나보다도 조금 더 이상한 사람있네?

 

마라톤가는것도 아닌데

꼭두새벽 3시에 무슨 운동을 한다며

두터운 옷차림에 열심히 걷고 있네?

 

저사람 허구한날 낮에 무엇하길래

밤거리를 저리 쏘다니남?

조금은 한심하고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며

끌끌 혼자 혀를 찬다.

 

근데?

남 이상하다고 할일이 아니고

정작 그사람은 나를 보고는 무어라 했을까?

 

웃을 일이다.

 

대기해있는 버스에 올라

불도끄고 의자를 뒤로뉘여

못다한 잠 청해보지만

온갓 상념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필름 끊어질 생각을 않고 계속돈다.

 

쓸모없는 고물영화 몇편을 머릿속에서 돌리고서야

간신히 비몽사몽 단계에 들어서고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서울시내 한복판 광화문 앞

 

8시에 출발하기로 예정

6시반에 도착했으니 한시간 반정도 여유가 있고

 

바깥 일기를 살피려 잠시 버스문 열고보니

몰아치는 바람이 한겨울 저리가라 할 정도

버스는 이곳에 오래 세워둘 수 없으니 무작정 내리란다.

 

갈데도 없고

딱히 추위를 피할곳도 없는데

내리라고 성화네?

 

주최측에서 짐 맡길때 쓰라고 나눠준

비닐가방을 들쳐 메고는

투덜투덜 푸념하며 내리는 수 밖에..........

 

하늘높이 솟은 사각형 블럭에다

컴컴하고 을씨년스런 공간

차가운 아스팔트위에 내동댕이쳐진

한마리의 양이라하기에는 좀 그렇고

가냘픈 중생을 바깥으로 내모니

시쳇말로 개떨듯 덜덜덜~~~~~~~

 

그나마

옷입고 떨때는 좀 덜한것

 

출발은 광화문

도착은 잠실운동장이다보니

물품을 맡긴차 서둘러 미리 출발해야 한단다.

 

교통통제가 이루어지기전 앞서 가야만

주자들이 도착해서 바로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다며

대형 스피카에서는 한시바삐 옷벗기를 강요하고

 

버티다 못해 7시 20여분쯤에 맡기고 보니

위에는 런닝에 티셔츠(달리다 벗어던질 옷)하나 걸치고

아래는 맨 팬티차림

 

아내의 말 공자말씀되어 머릿속에 콱 박힌다.

스타킹을 입고 왔음 얼마나 좋을까!

 

그나저나 미치지 않았음

이추운 겨울 서울까지와서 떨며 옷을 벗을까?

미치기는 단단히 미쳤구나를 반복해서 되뇌이고

덜덜덜 덜덜덜~~~~~~~~

나만 떠는게 아니고 3만여명 모두 덜덜덜을 합창한다.

 

견디다 못해 탈의장하라며 천막 친 곳으로

들어가 한군데 몰려 함께떠니 그나마 좀 낫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중에 현명한 사람들

지하철 역으로 달려가 추위를 피했던 모양

 

지하철 승객이 팬티와 런닝만을 입고

덜덜떠는 모습보며

무어라 생각 했을까?

 

추운데 힘내라며 스피카에서는

연신 구호를 외쳐보지만

엄연하고도 냉엄한 자연앞에

말로서 될 일인가? 오금이 다 저려온다.

 

이윽고 출발 신호 울리고

달리면 좀 나아지리라......

 

남대문을 지나

동대문쪽으로 한참 향하다가 다시유턴

이번엔 청계천으로 내닫는다.

 

한여름 도시를 가로지르는 시원한 물줄기

감탄사를 내던 내모습 어디가고

청계천 골바람 원망스럽고 매섭기만 하네?

 

중간에 나타난 분수는 또 

정말이지 분수없이 물 뿜어내며 몸자랑 한다.

 

청계천 구가 거의 끝에서 다시유턴

맞은편으로 테이프 되돌리듯

반복재생 한다음 마무리 

이내 잠실을 향해 내닫는다.

 

바람은 차지만 간간히 햇살이 따사로와

그나마 위로가 되고 초반인지라 힘도 넘치겠다

마음도 따스이 달리기를 얼마

 

수분 보충하기위해 나눠주는

스폰지를 받아들고 보니

물먹은 스폰지가 아니고

얼음을 얼궈놓은 사각 아이스크림으로 변해있어

웃음이 날밖에

 

천호대교 표시판

보이다가 사라지고 

서울시내 곳곳 어지간히 샅샅히 뒤졌다 싶을 즈음

한강다리 건너는데

바람의 세기가 얼마나 센지

떨어진 발, 땅에 닿은발 서로 부딛히며

몸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

 

그래도 우리는 좀 나은편

전국에서 온 손님 맞이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나오신분

그 오랜시간을 다리위에서

모진바람 다 맞으시며 음료와 간식 나눠주시느랴

무진 고생 다하심에 죄송스러움 가득.......

 

28킬로 지점

달리는 기계에 부하가 걸리기 시작

 

어이쿠 큰일났네!

골인점 아직도 멀었는데

지금부터 신호가 오면 어쩌란 말이냐?

 

달리지 못하고 걷다가는

길에서 동사할 판인데........

산처럼 걱정이 밀려온다.

 

주인 잘못만나 고생하는 두다리

참 팔자도 사납다.

 

허나 어쩌랴

주인 시키는 대로

열심히 앞뒤 왕복 하다보니

 

30킬로 표지판

 

이제부터는 정말 지옥의 코스

그간 비축했던 연료를 모두 태우고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텨야만하는 고행길

 

길옆에는 하나둘 비켜서 걷는 사람 보이고

나역시 저사람들 틈에 끼는게 아닌가하는 걱정으로 다가온다.

 

이생각 저생각

억지로 고향산천 생각까지 만들어

나름대로 부지런히 달리다보니

35킬로 표지판이 스쳐지나고

 

지금부터는 

표지판 보지말고 달려야 한다.

 

그 글씨에 질려

차라리 아스팔트만을 보며 달리는게 마음 편하고

고개 숙이고 달림

힘도 배가들고 호흡에 어려움이 있다는것

마라톤 교과서에 나와 있지만 그건 순전히 이론일뿐이다.

 

아니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이야기

힘들어 죽겠는데 고개 빳빳이 세우고 여유있게 달릴 사람있음

손들어 보라고 해?

 

묵묵히 이제는 묵념까지 곁들이며

골인지점 하나만을 생각

 

여기부터는 그간의 밑천

차곡차곡 감추어 두었던

그 모든것이 다 나와야하고

식어가는 의지 계속 북돋는 방법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걷는것조차 힘들어

길가에서 절뚝절뚝

달리는 우리를 존경과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가끔는 애가닳아 몇발짝을 달려보지만

이내 원위치로 돌아서고

평소에 공부를 게을리한자 반드시 거쳐야할 필수코스

어그적 어그적 걸으면서 머릿속 가득 골인점 맴돈다.

 

왜 이 고생을 사서하는지

지붕에 붉은 눈알 굴리는 차량

계속해서 오를것을 유혹해 오지만

정말 영구차에 오르는것보다 더 싫은게

그차에 오르는 일

그차를 돌려보내고

연신 절뚝이며 따라오는 건각들 모습 애처롭고

 

아니 달리고 있는

나도 언제 걷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드디어 40킬로 표지판을 뒤로하고

그간 연습을 좀 착실히 한 탓일까?

 

풀코스만 나오면

걷는게 다반사인 내 두발자동차

오늘은 이상없이 제힘 발휘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네!

 

드디어 잠실운동장 웅장한 모습 눈앞에 나타나며

골인점 향해 들어오는 가족기다리느라

길게 서있는 응원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마중나와 응원할 사람 와있는건 아니지만

길옆에 도열해 서있는 사람 모두

내 가족과 팬이되어 응원해줌에 가슴이 뭉클

 

백리가 넘는 여정을 마치고 

붉은 색 선명한 운동장에 들어서는 기쁨

온 천하를 다 준대도 이기분과 맛바꿀 수 있을까?

 

이 희열 못잊어 오늘도 나는 달린다.

 

남들보다 잘 달리는것도 아니고

대회때마다 등두드려주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상타서 집에 가져 올일  없는

한낫 이름없는 달림이 이지만

정해진 코스 모두 밟았다고 주는 동메달

오로지 그 메달을 소중히 여기는

숫자로 자리를 빛내주는 하나

 

그렇지만

일등으로 들어온 사람

꼴지로 간신히 들어온 사람

똑같은 색깔로 만들어진 동메달

그래서 이 메달이 더 값진것인지도 모르겠다.

 

 

= 벗어 던지리라던 웃옷 들어올때까지도 못 버리고

   결승점에서 내차량 번호판은 보여야겠기 티셔츠 입에물고 골인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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